"가디건 예쁘다"
하얀 원피스에 반소매 가디건을 입고 온 g에게 말을 건넸다가 뜨개질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 가디건을 직접 만들었을 줄이야. 권유도 긍정적으로 하는 g의 말에 넘어간 나는 베이지빛이 도는 연분홍실 5개와 4mm 코바늘을 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임이 시작됐다.
뜨개질은 실의 끝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동그란 실타래 겉에 드러난 실의 끝이 아닌 동그란 구멍 안에 숨겨진 실의 끝부분을 끄집어내야 한다. 한 번에 실이 많이 풀리거나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실타래 안에 손가락을 넣어 실의 끝을 찾은 후 다른 한 손에 코바늘을 쥐어 들었다. 세 개의 손가락에 차례대로 실을 걸고 바늘을 넣다 빼니 하나의 코가 만들어졌고, 이 첫 코가 시작이 되어 옷이 되는 기쁨을 맛봤다.
덤벙대고 약간 성미가 급한 나에게 어려운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꼼꼼함과 성실함이다.
뜨개질하기에 취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코를 세고 또 셌지만, 실을 주르륵 풀고 다시 떠야 하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됐다. 언제 끝날지 모를 패턴을 계속 만드는 일은 지루하면서도 즐거웠다. 지루한데 즐거울 수 있다니,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앞에 두고 씨름하는 기분과 비슷하려나.
한 코에 한 코를 더할수록 나를 위한 시간이 쌓이는 것 같았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시간이라 생각하니 의외로 금방 진도가 나갔다. 모양이 잘못되어 실을 당겨 풀 때면 '지금 뭐 하는 거지?' 싶다가도 다시 하나의 선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좋았다. 처음의 탄탄함과 매끈함이 사라진 실은 라면 면발처럼 꼬불거렸다. 볼품은 조금 없어졌지만, 여전히 쓰임새가 있는 재료라 생각하니 그런대로 멋져 보이기도 했다.
뜨개질은 완성 후 기쁨보다 만드는 과정의 기분을 만끽하기 좋은 취미다. 어떠한 모양에서 처음의 실로 되돌리는 행위를 반복할 때면 시작점에 다시 선 듯한 기분이 든다. 바닥에 어지러이 쌓인 실을 둥글게 말며 출발선에서 신발 끈을 단단히 묶는 선수의 마음을 상상하본다.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 간단한 동작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담담히 시작을 준비하는 선수처럼 풀린 실을 감으며 나는 흩어진 내 마음을 모으곤 했다. 그래서 나는 뜨는 것보다 푸는 게 더 좋았다. 꾸준히 실과 씨름하다 보니 사과만 했던 실타래는 껍질만 남은 사과처럼 얇아졌고, 다시 새로운 실과 연결하여 뜨개질을 이어나갔다. 끝인 듯 끝이 보이지 않는 뜨개질을 하며 나는 인생이 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을 엮듯 삶을 엮는다.
돌잡이에도 실이 있는 것처럼, 탄생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하루하루 연결된 삶을 산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채우며 어제와 내일을 잇는 오늘을 산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다 일상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로 내 계획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때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몰라 구멍이 뻥 뚫려버리기도 한다. 다행인 건 내 인생이 하나의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라는 유일함이 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홀로 선 자리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내 삶을 엮어간다. 일이 꼬였다고 슬퍼만 할 필요없다.
꼬임이 하나의 아름다운 패턴이 되듯, 엉킨 것 같은 지금의 일이 훗날 펼쳐봤을 때 가장 아름다운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뜨개질 할 때 적당한 힘과 텐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모양(패턴)이 더해지면 가장 좋은 형태가 나온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정도(程度)의 삶을 산다는 건 쉽지 않다. 지난 내 인생을 돌아보면 지나치게 팽팽하거나 쪼그라든 시절도 있었고 이유 없이 방황하고 떠돌았던 시기도 있었으며, 하루의 시간을 촘촘히 채워가는 게 즐거울 때도 있었다. 어김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망설이던 날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열심과 후회의 반복 속에서 나는 나의 텐션을 찾아가고 있다. 내 삶을 다루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기에 너무 팽팽하거나 느슨하지 않게, 건너뛰거나 더함 없이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