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20년 9월, 나는 비엔나에 살며 종종 베이비시터를 했다.
비엔나에서는 아이만 두고 부모가 외출할 수 없기에 주로 엄마가 재택근무를 하거나 부부가 함께 외출할 때 아이들을 돌봤다. 두세 살 터울의 삼 남매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만나 집에서 종이접기, 피아노치기, 책 읽기를 하거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대하는 법이라고는 대학생 시절 보육학개론 수업이 전부였기에 흥미를 느꼈다가도 이내 다른 재미를 찾는 아이들을 돌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루는 지루해하는 아이들과 무엇을 하고 놀지 고민하다 번뜩 *[세모 땅따먹기] 게임이 떠올랐다.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한 아이들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게임 규칙을 설명하기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아이들 손에 서로 다른 색의 크레파스 한 개씩 쥐여줬다.
"자, 일단 아무 곳에나 점을 찍어봐! 마음껏 찍어도 돼!"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얀 스케치북 가득히 콕콕 점을 찍어 나갔다. 나는 스케치북 이리저리 흩어진 점들을 가리키며 '점과 점을 연결해 세모를 만드는 게임으로, 세모를 완성하는 사람이 땅 주인이 되고 가장 많이 땅을 만든 사람이 승자'가 된다고 알려줬다.
혼자서는 땅을 만들 수 없는 게임, 누군가의 선에 나의 선을 더해야만 나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게임이다. 막내를 제외한 나와 아이들 2명이 번갈아 가며 선을 그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멀찍이 떨어진 점을 이어 삼각형의 기준선을 그어주거나 아이들이 삼각형을 완성할 수 있도록 삼각형의 두 번째 선을 이어주고는 했다. 선이 더해지며 하나둘 삼각형이 만들어지자, 아이들은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내가 그으려던 선을 누군가 그으면 깊은 한숨을 쉬기도 했고,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에 누군가 그을까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만의 삼각형이 완성될 때마다 자신만의 무늬(별, 동그라미 등)를 그린 후 뿌듯해하는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땅이 늘어날 때마다 아이들은 숫자를 세며 더 많은 세모를 만들기 위해 집중했다.
이 게임이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함께 즐겁게 웃었으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게임을 알려줬다는 뿌듯함도 잠시,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보다 삼각형을 많이 완성한 누나 때문에 화가 난 동생이 재택근무 중인 엄마에게 울며 뛰어갔고 그렇게 게임은 끝이 났다.
스케치북에 수많은 점은 꼭 우주의 별 같았다. 존재하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땅, 그 안에 점과 점을 연결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했다. 서로 떨어진 점을 연결하자 의미 없던 것들에 의미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삼각형이 되지 못한 채 곳곳에 남은 점들은 거대해진 삼각형 숲속에 숨통이 되어주었고 게임이 끝나자, 우리 앞엔 세상에 하나뿐인 우주가 완성되어 있었다.
떨어진 듯한 어제와 오늘,
작년과 올해도 서로가 이어져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삼각형이 만들어지는 이 게임처럼 오늘 우리의 선택은 지금이 아닌 미래로 향한다. 좋은 일과 슬픈 일이 맞닿아 지금의 내가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고, 나의 선택과 내 곁에 선 사람들이 내 삶을 돕는다. 무한한 우주에서 내 마음을 따라 나의 삶을 아름답게 지어가고 싶다. 올해는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는 연습을 통해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삶에 조금 더 익숙해져봐야겠다.
*[세모 땅따먹기] 를 클릭하면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