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부터 참여하게 된 모임에서 첫인사를 나눌 때였다. 같은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자리로 서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임지기는 우리에게 소책자를 건네며 “전체 질문 중 동그라미 친 질문을 답을 쓰고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눕시다”라고 말했다. 질문지에는 간단한 개인정보를 시작으로 지원서에 나올법한 질문이 쓰여 있었다.
질문 : 당신의 장점이 무엇인가요?
나의 답 : 긍정적이고 도전적임
잠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입꼬리를 단단히 아래로 내렸다.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민 없이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를 썼다. 사실 이곳에 앉아있는 그 누구보다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건 나였다.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 침묵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공기의 흐름을 바꿀 나의 긍정의 기운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더 이상 자기소개가 부끄럽거나 어렵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은 20세기 말에 태어난 4명과 21세기 초에 태어난 1명, 총 5명이었다.
나의 소개가 끝나고 유난히 수줍어 보이던 21세기 소녀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소녀는 약간의 침묵 이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낮은 톤의 잔잔한 목소리, 소곤소곤 귓속말하듯 전해지는 자기소개에서 소녀의 차분함이 그득히 묻어났다. 아마도 20세기에 태어난 언니 오빠들 틈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이 모임에 자신이 스며들 수 있을지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나였다면 그랬을 테니까.
질문 하나를 답할 때마다 2~3초간의 침묵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리고 장점을 이야기할 때 나는 때묻지 않은 소녀의 순수함을 보았다.
2.
"저의 장점은 느리고, 잘 기다릴 수 있어요"
지원서나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표현이 아니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고 그림이 그려지는 타인의 장점과 달리 소녀의 장점은 정말 자신의 진짜 성격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기다림에 익숙하다는 소녀의 대답을 들으니 그냥 쓴 나의 장점이 부끄럽고 머쓱했다. 다른 이들의 자기소개도 차례대로 이어졌는데 '기다림'이라는 단어에 너무 감격한 나머지 다른 이들의 장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과거 나는 기다림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나머지 도착 예정 시간에 변수의 확률만큼 추가시간을 더하고, 거기에 또 시간을 더해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먼 거리에서 통학하던 시절, 한번은 지하철이 갑자기 멈추더니 "문제 발생으로 인해 더 이상 운행이 불가하오니 가까운 전철역이나 기타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나는 스스로 비상사태임을 선포했다. 불안한 내 마음과 달리 머릿속에서는 기계적으로 나의 예상 경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핸드폰 주요기능이 문자와 전화가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주변에 위치한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을 떠올리며 동선을 짰고 나는 학교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것도 등교 시간 끝자락이 아닌 여유있게 말이다.
이랬던 내가 '이 정도의 여유시간이면 충분해'라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5~10분 늦는 것에 유연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중요한 일에 늦거나 무턱대고 늦은 적은 없다. 그전까지 '무조건'에 가까웠던 나의 시계에 일정한 틈이 생겼고 5분 안팎이 주는 여유를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다. 기다림의 시간이 좋아서는 아니며 타인을 기다리게 하는 마음이 싫어서다.
T는 이해하지 못할 F의 감정이다. 내가 늦었을 때 타인이 느낄 감정의 폭이 나와 같을까 싶어 나는 늦기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다. 추운 날 오갈 데 없는 허허벌판이 아니라면 어디든 쉬어갈 곳이 있기에 '기다림은 약속과 함께 오는 패키지'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기다림을 택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과는 결이 다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도 기다리는 사람에 속하는 편이니, 기다림이 나의 장점이 될 수 있으려나.
3.
'타인과 비교했을 때 돋보이는 나의 무언가'가 장점이라면 장점 배틀의 승자가 있을까. 이는 마치 “너보다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야”하며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수치화하는 것과 같다.
장점은 스스로가 좋게 여기는 참된 내 모습이다. 남보다 뛰어나거나 특출난 것이 아닌 나의 나된 모습을 바탕으로 내 삶을 아름답게 이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제부터인가 취미는 장점이 되고, 그 장점이 직무로 연결되어야하는 사회에 산다.
많은 지원서에서 장/단점을 묻는다. 그리고 단점을 어떻게 장점으로 승화할 것인지, 장점을 어떻게 직무에 연결할 것인지 묻는다. 우리 회사와 잘 맞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하는 기본 질문으로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니다.
"저는 잘 기다립니다" 라고 말한다면, "멋진 대답이네요! 근데 그게 왜 장점이죠?" 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성과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나의 인간미를 장점으로 내세우기란 쉽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다림 만큼 멋진 장점이 없다.
기다림은 내게 닿을 무언가를 떠올리며 마음을 간지럽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즐길 준비만 됐다면 모든 게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기다림에 익숙해지면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주변에 시선이 닿는다.
나의 시간만 천천히 흐르는 마법을 경험하고 싶다면 횡단보도만큼 좋은 곳이 없다.
나는 횡단보도에서 서두르지 않는다. 특히 초등학교 근처에 그려진 옐로카펫이 보이거나, 노란 안전선 뒤에 발모양 그림이 보이면 그 모양에 맞춰 발을 올려놓는다. 그림 가장자리를 벗어나지 않게 얹어놓은 내 발을 보고 있으면 마치 테트리스 블록이 꼭 맞닿아 "탁!"하고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였다면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받을만한 상황이기에 횡단보도 앞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스스로 채워간다.
빨간불이 깜박깜박거리면 사람들의 발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보행자 신호가 아닌 자동차 신호에 맞춰 일찌감치 건너기 시작하는 아저씨도 있다. 마치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고 싶은 경주마처럼 드릉드릉 발에 시동을 건다. 긴박함과는 거리가 먼 서두름은 횡단보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앞만 보고 달릴 준비를 마친 튼튼한 경주마가 되는 대신 동네를 맴도는 짤뚱한 당나귀가 되기로 선택했기에 횡단보도에서 뛰지 않으려 한다. 대신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하늘은 어떤지 사람들의 기분은 어떤지, 날씨는 어떤지 그래서 내 감정은 어떤지 묻는다. 깜박이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언제쯤 바뀔지 숫자를 세어보며 퀴즈를 낸다. 곧 건널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우리 일상에 스며든 규칙을 발견하는 재미에 집중한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를 때는 맨 마지막 주자가 된다.
선봉자가 되는 순간 내 뒤에 선 이들이 나의 호흡을 따라 걷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숨을 책임질 수 없으니 차라리 앞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로 한다.
앞사람의 걸음을 뒤따라 오르다 보면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모두가 위가 아닌 발아래를 보고 계단을 오른다. 많은 이들이 걷는 행위 대신 핸드폰에 집중하며 발을 움직인다. 스스로 기계적인 움직임을 택한다. 멀티테스킹을 가장한 채 본질에 집중하지 못한다. 미래의 인류는 분명 숫자 1(ㄱ)을 닮을 것이다. 하늘을 자유롭게 보지 못하는 돼지처럼, 우리는 거북목을 뛰어넘어 고개가 꺽인 새로운 존재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계단을 오를 때에는 앞사람이 몇 계단을 오르고 난 이후 걸음을 옮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앞사람이 쉬어갈 틈을 주기 위해서다. 앞사람과 가까워질수록 나의 걸음이나 호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몇 걸음 기다렸다 출발하면 앞사람이 느려지거나 멈추어 선다고 혼자 성낼 일이 없다. 단지 몇 걸음 늦게 걸어갈 뿐인데 앞사람을 배려하고 미래의 인류를 걱정하게 되다니, 누군가에겐 기다림이 철학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4.
기다림에는 모든 감정이 스며있다.
절망과 슬픔, 긴장과 두려움, 분노와 짜증, 즐거움과 기쁨 가릴 것 없이 모든 감정을 품는다.
정기진료를 보러 간 엄마와 통화가 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를 때,
벨소리가 울리길 기다림은 절박함에 가깝다.
1분 1초가 급한 화장실 앞에서 누군가 나오길 기다리는 마음은 긴장과 결의로 가득 차고
00시 발표될 합격자 명단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과 떨림으로 이어진다.
내 마음껏 행동할 수 있는 20살을 기다리는 19살의 마음은 기대와 열망이다.
추운 겨울, 지상철에서 열린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간절함이며
막 팥소를 넣고 굽기 시작한 붕어빵을 기다리는 마음은 신남과 행복이다.
따분한 단어 대신 나를 다르게 표현할 장점을 고민하다 우선 기다림을 사랑해보기로 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기다림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기다림은 약속 뿐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도 맞닿아있다.
삶에 모든 영역에서 기다림에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설렘 뿐만 아니라 불안한 나의 미래를 향해 걷는 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불안을 사랑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내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니..
21세기 소녀의 장점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