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래가 절망적이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미워하는 사람의 앞날에 걸림돌이 나타나길 바라는 심술궂은 마음을 이따금 품을 때도 있지만(부끄럽지만 나는 그렇다) 내 미래를 비관하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희망을 먹고 산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의 아쉬움을 툭툭 털어내고 내일을 기대한다. 삶을 포기하는 것이 자신이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매체에서 만날 때면 가슴이 시려온다.
우리는 불완전한 삶을 산다.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미래에 두려움을 가진 채 상상했던 것보다 좋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미래를 현실로 마주한다. 어제 기대한 내일을 오늘 마주하고 또다시 내일이라는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은 꿈에서 시작됐어. 그러니 꿈을 간직하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파는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인 웡카는 어렸을 때 엄마가 했던 당부를 잊지 않고 꿈의 여정을 떠난다. 판타지 영화인 <웡카>를 보며 행복했던 이유는 누군가의 꿈에서 시작된 세계 속에 내가 살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누군가 꿈꾸던 세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 주변에 놓인 모든 것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독립을 외쳤던 수많은 이들 덕분에 우리가 한글을 쓰는 독립적인 나라가 되었고, 달콤함에서 행복을 발견한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따뜻한 온기를 선물하고 싶었던 누군가의 꿈이 올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하였고 하늘을 날고 싶었던 누군가의 바람이 우리를 저 바다 너머로 이끌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읽히고 있다는 사실도 꽤 마법같은 순간임에 틀림없다.
영화 <웡카>에는 날지 않는 플라밍고가 나온다. 웡카는 '왜'라는 질문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만족한 채 살아가는 플라밍고를 하늘로 이끈다. 꿈꾸는 우리를 허망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지금을 누릴 자격이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꿈의 증인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기대해 보자.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면 다시금 설렘의 페달을 밟아보자. 예상치도 못한 장애물이 나타난다면 포기하기보다 주저앉더라도 장애물을 넘을 방법을 떠올려보자.
돌아가는 방법이 최선이라면 오래 걸리더라도 돌아가길 겁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 내 꿈의 주인이 되자.
세상에는 타인의 상처를 먹고 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꿈을 빼앗는 게 행복인 그들은 교묘한 말로 우리를 괴롭힌다. 20대 초반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나에게 한 어른이 말했다.
"아무것도 얻는 게 없을 거야"
외국에서 보내는 1년 남짓한 시간이 헛될 것이라 확신하던 말투와 표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다가오지 않은 타인의 미래를 불행하게 단정짓는 것만큼 나쁜 게 없다는 걸 그때 그 어른은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언어를 쓰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꿈을 이뤄갈 동력과 부스터가 될 말 한마디의 마법을 선물하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 나의 꿈이기도 하다. 나의 슬픔이 새로운 꿈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내 마음을 지키는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꿈을 빼앗기지 않고, 누군가의 꿈을 빼앗지도 않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For a moment
내 꿈을 응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시동안 눈을 감고 미래의 나를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다면 지금 이 순간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시작은 힘이 있다.
달콤한 것을 먹어본 사람이 달콤함을 선물할 수 있는 것처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어 희망을 선물할 수 있기를, 그렇게 더 따뜻한 세상이 펼쳐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