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해"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착한 어린이는 어른에게 인사를 잘하고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아야 한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학교에서 말썽부리지 않고, 친구를 괴롭히지 않아야 한다. 타인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거나 뺏지 말아야하며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끝없이 쓸 수 있을 듯한 착한 어린이의 삶은 얼마나 어려운 걸까. 이렇게 행동하지 않은 어른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착한 어린이가 돼라'는 말은 있어도 '착한 어른이 돼라'는 말은 없다는 게 의문일 만큼 어른의 세계는 각박하고 차갑기만 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상형을 묻는다면 '배려심 있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배려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타인이 우선되는 삶이라기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배려심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것을 의미한다. 인간관계 속 문제의 대부분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범죄가 발생하고 사회규범이 무너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함께 사는 사회가 아닌 '나'만 사는 세상이 당연시되어 가고 있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편이지만, 관심 있는 것은 놓치지 않고 살다 보니 마음이 쓰이고, 마음을 쓰고 싶은 일이 생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길 좋아해서인지 스쳐 지나가는 단어나 말에 귀가 먼저 반응한다.
예를 들어 "여긴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는 거지? 없는 건가."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주머니들을 지하철 승강장에서 마주쳤을 때, 지하철 문이 닫힐 때 당황한 얼굴로 "여기가 무슨 역이에요? 행신이예요?" 하며 아무에게 외치는 아저씨를 만났을 때,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층수가 눌러지지 않아 오르내리길 반복하던 아주머니들을 만났을 때, 가게 앞에 쌓인 함박눈을 조그마한 쓰레받기로 쓸고 있는 동네 사장님을 보았을 때, 그들이 느낀 당혹감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어진다.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천호에서 일을 마치고 개찰구를 막 통과했을 때였다.
"길동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하남 방향이 이쪽인가요?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방향을 잃은 아주머니가 건넨 말에 "저도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서 몰라요" 하고 지나칠 수 있었지만, 나는 멈춰선 채 핸드폰 지도 앱을 켰다.
"길동은 모르겠는데.. 하남은 저쪽으로 가시면 될 거예요. 저 방향이 맞아요!"
함께 걸어 내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질 무렵 아주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나에게 건넸다.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같이 길을 찾아보는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는다.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나의 마음을 조금 내어주는 것뿐이다.
왕십리역 환승구간에 위치한 꽃집에는 [길 모릅니다]라는 말이 붙어있다. '묻지도 마세요'라는 단호함과 닫혀 있는 꽃집 창문처럼 타인을 향한 마음을 닫아버린 그곳을 지날 때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내 마음이 나에게만 향하지 않고 밖으로도 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
누가 몰라주더라도 '스스로 속이지 말자' 다짐한다. 그래서 마음이 쓰이면 행동한다. 마음이 쓰였다는 건 지나고 나서도 생각날 일이란 걸 알기에 빌라 주차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구시렁거리며 한다) 감사 인사에 인색하지 않고, 천천히 주변에 모든 것에 시선을 머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인연에게 미소로 기억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때로는 나의 친절이 당연시되는 순간도 있지만, 약간의 언짢음보다 내 안에 기쁨이 더 크다. 하루를 정리하며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착한 어른은 아니지만, '스스로 기특하다' 미소 지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나간다. 내일이면 잊어버리겠지만 괜찮다. 누군가는 느끼지 못할 오늘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었으니까.
착한 어린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가 *배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착한 어린이가 되라는 것은 나와 타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가 아닐까.
함께하는 사회에서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인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착한 어린이가 되는 법이 많은 것처럼 배려하는 어른으로 사는 방법도 많다. 매 순간 그렇지 살지 않아도 된다. 순간순간 타인을 마음에 둘 수 있으면, 오늘의 착한 일이 떠오르는 날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오늘의 기쁨도 더 커질 것이라 믿는다.
*여기서 배려는 존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브런치매거진 [안녕하세요,하다씨] 에서 배려하다의 의미를 생각해 보실 수 있습니다.
|